이육사 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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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 본론
Ⅱ.1. 주제
Ⅱ.1.1. 현실의식과 자아인식
Ⅱ.1.2. 실향의식과 방랑의식
Ⅱ.1.3. 초인의지과 염원(기다림)
Ⅱ.2. 시의 형태․의미분석
Ⅱ.2.1. 시 미학적 특성

Ⅲ.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
육사 이원록은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22세 때인 1925년 국민당정의부, 대한독립당 군정서, 의열단 등에 친우였던 이정기와 함께 가입, 주로 자금 모집책으로 활동하였다. 24세인 1927년에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 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피검되었는데, 1929년에 미결수로 석방되었다. 1930년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하면서 그의 문학활동을 출발하는데, 이 시의 특징은 하나도 다른 색채를 띠지 않고 오직 말에 대한 이미지만 그리고 있는 것이다. 1935년에는 민족주의자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과 민세(民世) 안재홍 선생을 알게 되면서부터 《신조선지》와 인연을 맺게 되는데 여기서 신석초와 친교를 맺는다. 육사가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하게 된 잡지도 《신조선지》로 여기에서 최초로 발표한 작품이 〈춘수삼제(春愁三題)〉와 〈황혼(黃昏)〉이었다. 신석초의 회고록을 통하면 그의 시작이 이 무렵 활발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1937년 윤곤강․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하였으며,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절정(絶頂)〉,〈광야(曠野)〉등을 발표했다. 이 무렵부터 지나친 과로와 의열단의 단원으로서의 무리한 격무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1941년에는 폐질환으로 성모병원에 입원하기에까지 이르다. 1943년 7월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 끝에 북경으로 압송되는데 이 때의 체포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1944년 당시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친척인 이병의가 그의 사망신고를 했다.
이육사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에 대한 투철한 자각과 그 사명을 행동으로 구체화하는 실천력이 있었다. 육사가 남긴 작품들을 검토함으로써 그의 시문학 세계를 밝히고자 한다.
이육사, 저항시, 이원록, 현대시, 교목
김익중, 「육사시의 외적 형식과 내적 형식고찰」, 동국대학교 석사논문, 1986
강화목, 「이육사 시연구」, 고려대교육대학원 석사논문, 1977
이동명 편, 『한국현대시인연구-이육사』, 문학세계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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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옥, 「이육사론」-特히 詩의 主題와 形態를 中心으로-,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1982
박계숙, 『한국 현대시의 구조연구』,국학자료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