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연구 리포트입니다.
A+ 받은 자료입니다. 받아가시는 모든분들이 좋은 점수받기 바랍니다.
많은 도움되시길 바랍니다^^
1. 들어가며
2. 본 론
■이육사의 생애
■이육사 시의 변천과정
■항일 저항시적 해석
■신적 표형 양상
1) 자연적 대상
2) 초인적 대상
■ 형식적 구조
3. 나가며
※참고문헌
2. 본 론
■이육사의 생애
호 육사(陸史), 본명은 이원록(源祿)이다.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安東)에서 출생하였다.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했고 1926년 베이징[北京]으로 가서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魯迅]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3년 귀국, 육사란 이름으로 시 〈황혼(黃昏)〉을 《신조선(新朝鮮)》에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 신문사·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시나리오까지 손을 댔고, 루쉰의 소설 《고향(故鄕)》을 번역하였다. 1937년 윤곤강(尹崑崗) ·김광균(金光均)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절정(絶頂)〉,〈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이 해 6월에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친척인 이병희가 1944년 1월 16일에 사망신고를 하였다.
이육사는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이육사 사후에 안동시에 육사시비(陸史詩碑)가 세워졌고, 1946년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