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 대관령은 바람도 유명하고 눈도 유명한 곳이라. 겨울 한철에 바람이 심할 때는 기왓장이 훌훌 날린다는 바람이요, 눈이 많이 올 때는 지붕 처마가 파묻힌다는 눈이라. 대체 바람도 굉장하고 눈도 굉장한 곳이나, 그것은 대관령 서편의 서강릉이라는 곳을 이른 말이요, 대관령 동편의 동강릉은 잔풍향양(潺風向陽)하고 겨울에 눈도 좀 덜 쌓이는 곳이라.
이인직(1862-1916)의 소설 <은세계(銀世界)>에서 대관령은 바람과 눈의 세계이자 동강릉과 서강릉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다. 이 8백수십 미터 높이의 고개는 좁게는 서강릉과 동강릉을, 넓게는 영서와 영동을 나누며 솟아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양쪽을 이어 붙이는 연결통로의 구실도 맡아 하고 있다. 경계와 통로―나누고 연결하는 대관령의 이 두가지
상반된 기능이 <은세계> 전반부의 구성원리로 기능한다.
신소설의 개척자로 국문학사에 자리매김되는 이인직이 1908년에 발표한 <은세계>는 두개의 이질적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릉 경금 동네에 사는 알부자 최병도가 그의 재산을 노린 강원감사에게 붙들려가 고초를 당한 끝에 죽음을 맞는 전반부, 그리고 그의 소생인 옥순․옥남 남매가 미국에 유학 가서 선진문물을 배우고 돌아오는 후반부가 그것이다.
강렬한 반봉건과 근대화 지향의 메시지로 하여 문학사적 자리를 확고히 한 이 소설에서 최병도가 살던 동강릉은 백성들의 노동과 절약과 저축이 결실을 맺은 풍요와 자족의 땅으로 묘사된다. 거기에는 물론 대관령 서쪽으로 상징되는 봉건적 탐학의 부당성과 잔혹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다.
<은세계> 전반부는 당시 구전되고 있던 민요를 적절히 삽입하여 봉건체제의 질곡과 서민들의 해방 욕구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가운데 경금 동네 농부들이 모내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봉건적 탐학의 정도와 그에 대한 백성들의 인식을 단적으로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