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문학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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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문학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기억이 한 가지씩은 있듯이, 우리 문학사에도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금부터 논의하려는 친일문학이 아닐까 한다. 일제 강점의 시절, 정말 좋아서 친일문학을 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마는 일제가 우리를 괴롭게 했던 것만큼이나 그들의 친일 행위는 우리 민족에게 큰 아픔이었다. 그러나 그 아픔을 그냥 덮어두는 것은 그리 발전적인 일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아픔인 그 양상을 다시 한번 살핌으로써, 만에 하나 우리 나라에 다시 시련이 온다해도 이런 일은 되풀이되지 않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인직으로부터 시작한 문학의 친일 오욕은 대략 50여 년을 굽이치다가 해방이 되어서야 현실이라는 타의에 의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친일의 오욕은 당대에 해결된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민족의 정신사를 훼절했던 원죄처럼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중이다. 을사조약과 경술국치 때부터 등장한, 아니 그 이전부터 기세가 등등했던 친일파 세력은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는 더욱 잔악해져 일제가 전쟁 수행을 위한 총력체제 구축을 독려하면서 친일파들은 본격적인 친일적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1939년 10월 총독부 학무국의 지시 아래 [조선문인협회]가 결성되자 조선의 문학가들은 숭일황도(崇日皇道)의 광란에 빠져들었다. 이 단체는 1943년 4월 17일 [조선문인보국회]로 개편하여 세계제일의 황도문학을 깃발로 내걸고 친일의 오욕으로 매진했던 친일문학의 본산이다. 총독부는 1940년 8월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하고 1941년 「인문평론」과 「문장」마저 없애 버렸다. 그러자 그해 친일문학의 온상 「국민문학」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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