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초(菊初) 이인직(李仁稙;1862~1917)은 우리 문학사에서 동시대의 이해조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신소설 작가이다. 구한말 정부의 관비 유학생이었던 그는 유학 생활 중에 일본의 정치소설을 접하면서 언론의 역할과 정치소설의 기능을 점차 익히게 된다. 서기 계급 출신의 미미한 신분계층으로 지배계급에 대한 불만과 저항정신을 품고 있었던 그로서는 신분 상승의 도화선을 찾은 셈이다. 구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해결책으로 현실 정치의 야망을 갖게 된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신소설에 문명개화 사상과 교육 입국(敎育立國)으로 나타나고, 청일전쟁의 통역관으로 종군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적 포부를 펼치기 위한 반청(反淸)․친일쪽으로 기울어진다.
정치란 바로 신문연재 정치소설 속에 있음1)을 깨달은 이인직은 일본식 의회정치 상황하에서 씌어진 정치소설을 쓰고자 『혈의 누』와 『은세계』와 같은 신소설을 집필하였으나 구한말의 정치현실 속에서 그의 신소설은 준 정치소설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인직 신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은세계』 전반부에는 당대 구정치인들에 대한 고발, 항거, 증오 등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대체로 민중들의 저항정신을 표면적 주제로 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우리 민족의 한을 담고 있다. 동시에 그가 신소설을 통하여 나타내려는 저항정신은 그의 세계관에서 오는 당대 정치 현실에 대한 발언이기도 하다.
이인직의 신소설은 이른바 중세 봉건적 사고의 소산인 고대소설의 구조를 벗어나 근대 시민의식의 발아를 엿보게 하는 신소설로서의 지향점과 작가의 사상과 세계관을 시대적 요인으로 해서 한껏 펼칠 수 없었던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문제의 작가로서, 특히 이념성과 흥미성을 아우르는 그의 소설이 근대소설의 장을 여는 이광수와 김동인에게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소설 사상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