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이상화
민족시인이상화는 7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백부의 훈도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이상화의 문학 활동
이상화의 시인 역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족시인이상화는 7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백부의 훈도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1925년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인 KAPF의 창립 회원으로 참가를 하였습니다.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에 사망한 이상화는 현재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고 요 대구광역시 달성공원에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1922년에는 홍사용 ‧박종화‧박영희 ‧김기진 등과 함께 순수문학동인지인 백조의 동인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이상화의 문학 활동
이상화는 백조잡지에 말세의 희탄과 이중의 사망, 나의 침실로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더구나 그림도 같고 꿈과도 같은 좋은 밤이 다초가을 열 나흘 밤 열푸른 유리로 천장을 한밤 거기서 달은 마중 왔다 얼굴을 쳐들고 별은 기다린다
이런 때 이런 밤이 나라까지 복지게 보이는 저편 하늘을 햇살이 못 쪼이는 그 땅에 나서 가슴 밑바닥으로 못 웃어본 나는 선뜻만 보아도 철 모르는 나의 마음홀 아비 자식 아비를 따르듯 불본 나비가 되어 꾀이는 얼굴과 같은 달에게로 웃는 이빨 같은 별에게로 앞도 모르고 뒤도 모르고 곤두치듯 줄 달음질을 쳐서 가더니.
이상화의 저항정신을 잘 나타내는 작품으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역천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