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시 연구 리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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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인 연구-이상화(1901~1943)
Ⅱ. 첫 번째 시 연구-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연구 1> 노동 사상과 저항 정신의 육화(肉化)
<연구 2> 삶의 터전을 빼앗긴 슬픔과 영탄의 표현
Ⅲ. 두 번째 시 연구-나의 침실로
<연구 1> 절망의 시
<연구 2> 죽음과 부활의 시
Ⅳ. 참고문헌
Ⅰ. 시인 연구-이상화(1901~1943)
이상화(李相和)는 1901년 4월 5일 대구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은 경주(慶州), 호는 무량(無量)상화(尙火)백아(白亞)이다. 큰아버지 이시우가 세운 사숙에서 보통학교의 교육을 받고 1918년 경성중학교 3학년을 수료했다. 31운동 당시 대구에서 백기만 등과 함께 거사하려다 실패하였다. 1922년『백조』의 동인이 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프랑스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불어를 공부하였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귀국한 후 박영희, 김기진 등과 카프 활동을 했다. 1927년 의열단 이종암 사건으로 구금되고 조선일보 경북 총국을 맡아 경영했지만 실패했다. 그 후 1935년 북경에 있는 큰형 이상정을 만나러 중국으로 갔다가 그곳을 둘러본 뒤 귀국하다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5년간 교육 사업과 문화 사업에 힘쓰다 지병인 위암으로 1943년 4월 25일 작고했다.
<중 략>
그 뿐만 아니라, 절망의 벽을 어떻게 부수고 삶을 되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실한 모색도 보이지 않는다. 삶을 부정해야 삶이 구제될 수 있다는 논리는 절망의 벽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기도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시인은 무관심하다. 절망의 양상을 다루는 시인의 사고방식이 그만큼 단선적이고 일차원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1920년대 전반기 시의 일반적인 한계는 시인이 민족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재인식하고, 지식인과 민중의 역사적인 제휴에 참가할 때 극복될 수 있었는데, 이 시는 거기까지 미치지 않은 것이다.
이상화가 만약 이런 시만 쓰고 말았다면, 우리는 오늘날 이상화를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이상화의 시는 한 편씩 독립된 것이기도 하면서,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기도 한다.「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같은 후기시는 초기시에 대한 부정이며 반론으로 초기시에서의 관념적인 절망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서 후기시를 이룩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세찰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