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직전 애국 계몽운동의 정치결사의 조직과 활동

1. 일제시대 직전 애국 계몽운동의 정치결.hwp
2. 일제시대 직전 애국 계몽운동의 정치결.pdf
일제시대 직전 애국 계몽운동의 정치결사의 조직과 활동
일제시대 직전 애국 계몽운동의 정치결사의 조직과 활동

1. 들어가며

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일제의 한국 침탈이 노골화되는 가운데 계몽운동가들은 반일투쟁을 전개하면서도 국가체제의 근대적 개혁을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들은 한국이 당면한 정치․사회적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정치적인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2. 보안회와 헌정연구회

정치운동을 전개한 단체로는 1904년에 조직된 보안회(輔安會)가 있었는데, 일본이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며 영토강탈의 의도를 드러내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다. 보 안회는 보다 더 강력한 반일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출발하였다[미주 1]. 봉건적 관료층인 신기선(申箕善)․이유인(李裕寅)․송수만 등이 주축이 된 보안회는 보국․안민을 기치로 하여 일제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를 철회시키는 등 반일활동을 전개하였다[미주 2]. 보안회는 협동회(協同會)로 발전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끝내 해산되고 말았다.

보안회의 뒤를 이어 1905년 5월에는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가 조직되었다. 헌정연구회는 을사5조약을 반대하는 등 반일정치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정치적인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국권상실의 위기를 타개할 것을 주장하였다. 헌정연구회는 입헌군주제를 달성하여 국민의 민권을 확대시키고 이를 기초로 국가의 발전을 추구할 것을 주장하면서 대중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에 들어 헌정연구회를 비롯하여 인민대의회 등의 정치단체들이 속속 설립되자 일제와 정부는 서울에서의 정치적인 집회를 일절 금지하고 각 단체의 정치활동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헌정연구회도 해산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합법적인 정치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자 국권회복의 토대로 실력을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산업의 진흥과 교육의 발전을 우선하는 계몽운동만이 전개되었다.

3. 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