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항복이 발표 결정되었으나, 제주도에 남아 있던 일본군이 철수하기 시작한 것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68일이나 지난 1945년 10월 23일부터였다. 제주도는 아직 일본군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민은 일제하 민족해방운동의 조직 경험과 방법을 토대로 자치적인 치안조직 및 행정·경제조직의 결성에 착수하였다.
우선 도민을 방어하기 위한 자위기관으로서 자주적으로 청년대나 보위대를 편성하였으며, 관공서, 학교, 기업체 등에서는 ‘--- 관리위원회’ ‘--- 복귀위원회’를 만들어 도민들의 손으로 접수·관리·운영되었다. 이를 모태로 45년 9월 10일 제주도 건국준비위원회(위원장 吳大進)가 결성되었다. ‘제주읍 인민위원회’를 시작으로 각 인민위원회가 조직되고 마침내 건준의 발전적 해체로 9월 22일 ‘제주도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 결과 제주도는 1945년- 46년 사이에는 인민위원회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었다.
이것과 병행하여 청년·부녀·문화운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한림면 청년동맹의 결성을 위시하여 9월말에는 각면의 청년단체를 총망라한 통일기구로서 ‘청년동맹 제주도위원회’가 조직된다. 10월초에는 조선공산당 제주도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1928년)에 연루되어 투옥된 바 있던 金正魯가 주도하였다고 한다. 연말에 이르기까지 부녀위원회, 교육자동맹, 소비조합, 관리조합, 협동조합, 제주문화협회 등 각종 외곽단체가 광범위하게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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