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정배경
2007년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발의, 주도한 김광제 선생과 서상돈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동시에 선정하였다.
김광제 선생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한학을 익힌 뒤 관직에 올랐다. 1905년 동래경무관으로 재직 중,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사직상소를 올려 친일파의 탄핵과 내정쇄신을 요구하였다. 이로 인해 고군산도에 유배되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고, 1906년 대구로 옮겨 서상돈 선생과 함께 광문사를 조직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서상돈 선생은 독실한 천주교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이 신사고와 근대의식을 가졌다. 보부상으로 출발하여 큰 재산을 모으며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에 참여하여 근대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수구파의 탄압으로 독립협회가 해산된 뒤 대구에서 김광제와 함께 광문사를 세워 계몽운동에 동참하였다. 특히 두 분은 광문사 사장과 부사장으로 활동하며 나라의 빚이 많아 외세의 간섭과 국망의 위기를 초래하였다고 인식하여 국채갚기운동, 즉 국채보상운동을 발의, 주도하였다. 대구에 국채보상연합회의소를 조직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적이며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이끈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민족운동을 계속하였다. 김광제 선생은 만주로 망명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제2의 3·1운동을 시도하고, ‘조선노동대회’를 조직하여 민족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친 두분 선생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리어 선정한 것이다.
2. 주요공적
김광제(金光済) 선생
○ 1905 을사늑약 반대 운동
○ 1907 국채보상운동 발의, 주도
○ 1915 만주 일신학교(흥동학교)에서 민족교육
○ 1920 제2의 3·1운동 시도
서상돈(徐相敦) 선생
○ 1898 만민공동회운동 참여
○ 1899 ~ 1906 각종 사립학교 설립 지원
○ 1907 국채보상운동 발의, 주도
기념 행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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