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學運動과 甲午農民戰爭은 한국의 근대사에 있어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운동( 또는 혁명이든 반란이든, 아니면 봉기든)이 가지고 있고 지향하던 변혁적 자세나 운동적 역량이 한국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며 그 후의 역사전개에 있어서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동학농민전쟁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운동에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역사적 사회적 의의는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따라서 우선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인 평가를 내리기 전에 동학농민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을 하고 있는지를 개괄적으로 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겠다. 그런 연후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의에 대한 올바른 고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동학농민전쟁의 성격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성격론은 다양하다. 동학운동에 대한 명칭만을 보더라도 그 다양한 해석을 잘 알 수 있다.‘東學農民革命運動’,‘農民反亂’,‘東學農民運動’,‘東學革命’등으로 많은 해석이 있다. 그중에서도 주로 실패한 혁명이나 혁명운동이냐라는 문제와 혁명으로 보기에는 힘든 아직 혁명이나 혁명운동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농민봉기, 농민전쟁, 농민운동으로 보느냐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겠다. 물론 조선왕조 통치집단의 입장과 관점을 그대로 계승한‘亂’적 개념도 존재하며 다른 해석도 있지만 더욱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이 두가지 관점을 가지고 살피려 한다.
1894년에 일어난 갑오동학농민운동은 농민군을 편성하여 무장을 하고 군대의 편제를 만들어 전투를 하고 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형태상으로는‘농민전쟁’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형태론의 측면에서는‘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전쟁’이라고 부르기에 틀림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