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대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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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사화
■조선시대 사대사화 ■

☞조선이 건국되고 약100년간의 시대는 훈구세력의 집권시대로 비교적 국가안정을 이루는 듯 보였다. 그러나 훈구세력의 독점적 정권장악은 결국 사회를 부패하게 만들었고. 방만한 양반 관료주의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15세기말에서 16세기 중엽까지 한정된 관직을 둘러싸고 보수세력인 훈구파와 신진세력인 사림세력들간의 권력 암투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사화라고 부르며, 피지배 계층인 백성들에는 끊임없이 민란이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대표 적 민란이 16세기 중엽에 황해도 구월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임꺽정의 난을 들수 있다.☜

1. 무오사화(戊午士禍)-1498

성종이 죽자 상황은 급변했다. 성종에 이어 등극한 연산군은 학문을 싫어하고 언론을 귀찮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림을 배척하고 있던 연산에게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척 세력이 불을 붙이게 되었다. 사건은 1498(연산군4)년 무오년, 성종실록 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1498년 실록청이 개설되고 이극돈이 실록 작업의 당상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김일손이 작성한 사초 점검 과정에서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 과 이극돈 자신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발견했다.

조의제문 은 진나라 항우가 초의 의제를 폐한 일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글에서 김종직은 의제를 조의하는 제문 형식을 빌려 의제를 폐위한 항우의 처사를 비판하고 있었다. 이는 곧 세조의 단종 폐위를 빗댄 것으로 은유적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나머지 상소문은 세조비 정희왕후 상중에 전라감사로 있던 이극돈이 근신하지 않고 장흥의 기생과 어울렸다는 불미스러운 사실을 적은 것이었다. 당시 이 상소 사건으로 이극돈은 김종직을 원수 대하듯 했는데, 그것이 사초에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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