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 남명학파 번성과 쇠퇴 (기축옥사~인조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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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 남명학파 번성과 쇠퇴 (기축옥사~인조반정)
남명학파 번성과 쇠퇴 (기축옥사~인조반정)

연산군 7년(1501)에서 선조 5년(1572)에 이르는 시기는 조선에 4대 사화 가운데 3대 사화가 잇달아 일어난 사화의 결정기에 해당한다. 실제로 조식은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과 참변을 당하는 것을 몸소 목격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남명은 학문과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면서, 좌절감을 사로잡힌 사림들에게 사기를 진작시켜 기상을 더욱 드높이고 긍지감을 심어 주었다. 그의 문하에서 수많은 학자, 정치가, 의병장을 배출하였고, 훗날 사숙인들까지 합해서 경상우도를 중심으로 해서 경상좌도, 서울.경기지방 및 전라도 등 전국에 두루 결쳐 큰 학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경기. 호남의 서인이 주측으로 된 율곡학파는 물론, 경상좌도의 남인이 주축으로 된 퇴계학파에 대해서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학파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남명하파 또는 강우학파라고 부른다.
그 문인과 사숙인들은 스승이 품은 기상과 학풍에 영향을 받아, 대부분 높은 기상과 정의를 지켰고 산림에 온거해서 높은 뜻을 구하는 기풍을 지녔다. 그들은 세속적인 명예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권력에 얽매이지도 않는다는 만 길 절벽처럼 우뚝 솟아 있는 굳센 기상을 자랑하는 긍지감을 지녔다. 남명학파는 명종 대에 공신과 외척 정권을 무너뜨리고 사림정권이 들어서게 하는 정권교체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이랑 위기상황에서도 가장 활발한 의병 활동을 전개해서 대혼란을 극복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처럼 남명학파는 명종. 성종. 광해군 연간에 걸쳐 그 시대상황과 정국을 주도하는 중심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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