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 김만중(1637-1692)에 의해 지어진 [구운몽]은 ‘어떻게 살 것인가’란 삶의 핵심적 문제를 꿈이라는 낭만적 형식을 빌어 다층적으로 깊이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운몽]은 소설에 비판적이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서도 폭 넓은 공감을 얻었으며, 일찍부터 연구자들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아 왔다.
이본 및 사상 연구에 집중되었던 70년대까지의 논의는 정규복에 의해 주도되었는데,1)1) 정규복은 “구운몽 영역본고”(국어국문학․21, 국어국문학회, 1959)를 처음 발표한 이래, 십수년에 걸쳐 [구운몽]을 집중 연구하여 그 결과를「구운몽 연구」 ( 고려대 출판부, 1974)로 묶어 내었는데, 이는 70년대까지의 [구운몽] 연구에서 가장 주목되는 성과였다.
특히 그의 [금강경] 공사상설은 작품 이해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는 중요한 성과였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김일렬과 조동일에 의해 [금강경] 사상설에 대한 체계적 반론이 제기되고,2)2) 김일렬(1981), “구운몽의 신고찰”, 한국고전산문연구, 동화문화사.
조동일(1983), “구운몽과 금강경, 무엇이 문제인가”, 김만중연구, 새문사.
[금강경] 사상설을 거듭 확인하는 재반론이 나오면서,3)3) 정규복(1989), “구운몽의 공관시비”, 수여 성기열박사 환력기념논총.
유병환(1989), “구운몽과 금강경의 대응양상”, 공주사대 논문집(27).
장효현(1993), “[구운몽]의 주제와 그 수용사에 관한 연구”, 김만중문학연구, 국학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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