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는 안재홍(安在鴻)˙백관수(白寬洙)˙신채호(申采浩)˙신석우(申錫雨)˙유억겸(兪億兼)등
34명이 발기인이 되어 초대 회장에 이상재(李商在), 부회장에 권동진(權東鎭)을 선임하여 출범하였다.
신간회는 일제시대에 조직되었던 많은 민족 해방운동 단체 중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1927년 2월부터 1931년 5월까지 존속한 신간회는 서울에 본부가 설치되었고, 지역적으로는 당시 전국 부군도의 약 7할에 해당하는 200여개소에 그 지회를 두고 있었으며, 회원 구성면으로는 3.1운동 때보다 광범위한 각계의 인물들이 참여하고 있었고, 자필자서 능력자라는 회원자격규정에도 불구하고 근 5만여명1)1) 신간회 회원은 통상 4만명인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당시의 신간경성지회, “통의문”, 조선일보(1931.1.19) 등에서 5만명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신간회 경성지회장등을 역임한 조병옥은 신간회의 회원이 10만여명에 달하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조병옥, 나의 회고록 1959
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이 이같은 신간회의 비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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