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화랑의 후예>는 김동리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1935년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되어 동년 1월 신문지상에 발표되었다. 여기서는 작중화자인 '나'가 구시대 이씨 조선의 사고 방식을 가진 채 살아가는 주인공 '황진사(黃 進士)'를 만나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황진사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나는 숙부의 권유에 따라 '조선의 심볼'들이 모여든다고 하는 어느 관상 보는 집에 들른다. 거기서 마침 나는 점괘를 뽑고 있던 황진사를 만난 것이다. 뚜렷한 거처도 없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주린 배를 채 우는 황진사는 그 이후 나의 집으로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를 명약이랍시고 들고 온다. 또한 친구에게 책상을 들려 강매하 러 온다. 그는 나를 자주 성가시게 한다. 이같이 궁색한 신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양반 태생이란 사실을 무한히 자랑스러 워 하며, 어떤 장난꾼이 조롱삼아 부르기 시작한 '황진사'란 칭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이 같은 황진사에 대해 연민을 금할 수 없다. 어느 날 내가 전대 속에 주역(周易) 책을 넣어 다니는 그를 발견하고 그 연유를 묻자, 황진사는 주역이야말로 ' 지략의 조종이요, 조화의 근본'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언제나 몸에 지닌 솔잎 한 줌과 네 귀 모지라진 주역 속에서 우러난 음양오행의 지모 조화가 겨우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 약과 친구에게 책상을 들리고 다니는 것쯤인가고 생 각할 때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한번은 이처럼 신세 처량한 그를 동정하여, 늘 자식 없음을 한스러워 하는 그에게 나와 숙모가 집칸이나 가진 과부댁에게 중매 를 하려고 하나, 그는 예의 문벌을 내세워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는 곧 호령이라도 내릴 듯이 누렇게 부은 두 볼이 꿈적꿈적하며 노기 띤 눈을 부라리곤 하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황후암(黃厚庵)의 6대 증손이유.
하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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