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_문학세계(친일문학에_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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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문학세계(친일문학에 대해)

이광수 (96.12.15, 경향)

-숨어살던 농가엔 초라한 기념비가…-
-춘원의 은신처 경기도 양주 사릉리-

『아버님이 납북되실 때 어머님은 아버님을 붙잡아 가는 공산당에게 자꾸만 절을 하셨어요. 그랬더니 그 공산당원은 어머님이 그에게 절하는 게 봉건주의사상이라며 날카롭게 쏘아붙였어요. 그러자 아버님은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뜻에서 절을 하는 것이지 봉건주의는 아니라고 타이르셨죠』.
그게 마지막이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의 차녀 이정화(李廷華․62)씨는 당시를 회상할 때마다 안타까움만 더한다고 했다. 1950년 7월12일 오후 3시쯤 서울 효자동 175. 춘원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국 최초의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쓴 춘원 이광수.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던 그는 계몽주의․민족주의․인도주의적인 작품을 남긴 문호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를 따라 다니는 한 마디. 친일파. 춘원만큼 영욕을 한 몸에 받은 인물도 흔치 않다. 춘원의 참회와 변명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아직도 명쾌한 답으로 다가오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해방후 2년동안 춘원은 붓을 꺾었다. 1944년 3월. 춘원은 은둔생활을 위해 양주군 진건면 사릉3리 520에 집을 짓고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 동네 사람들은 춘원을 친일파이기보다는 문인으로 존경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아이들과 내려온 부인 허영숙은 『서울에선 「친일파 이광수타도」라는 구호가 나붙고 험악하니 다른 곳으로 피신하라』고 했다.
현재 집 앞에는 92년 「춘원 이광수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세운 3개의 기념비가 놓여있다. 1944년부터 48년까지 춘원의 숨결이 배어있던 곳. 그 동안 여러 차례 보수됐고, 정씨 일가가 1945년 8월 이후 52년째 세들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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