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님의 사상과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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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님의 사상과 생애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님의 사상과 생애

- 남자가 어찌 땅을 보고 세면을 하느냐

1. 서 론

얼마전 와타나베 전 일본 외상의 망언이 우리를 다시 자극하고 있다. 그는 “한-일 합방이 무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일본은 한국을 통치한 적은 있으나, 식민지로 지배하지는 않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실로 터무니 없는 역사적 망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건을 바라보면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일제시대에 변절과 투항으로 얼룩진 이 땅의 지식인들의 행적을 뒤돌아볼 때 비타협적 투쟁으로 일관해온 신채호의 생애는 우리에게 민족과 독립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 한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민족주의 사학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강한 민족주의 정신으로 일제시대에 민족정신을 북돋웠던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의 사상과 생애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2. 본 론

출생과 주위환경
신채호는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고령 신씨인 신광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마을에는 신숙주의 후예들 수백 호가 집단부락을 이루며 살았다. 이들은 조선조의 향반(鄕班)으로서 재산으로나 신분으로나 행세깨나 하는 명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7살에 아버지를, 15살에 친형(재호)를 잃은 신채호는 할아버지 신성우(급제해 오른 벼슬을 일찍이 버리고 고향에서 서당을 꾸렸음)에 의해서 키워졌다.
이때 그가 살던 마을에는 그만한 또래의 재동들이 많았다. 뒤에 독립투사로 활약한 신규식(申圭植:상해 임시정부 국무총리대리), 신건식(申建植:주중대사) 형제, 신석우(申錫雨:조선일보사 사장), 신백우(申伯雨:서로군정서 참모) 등이 각기 꿈을 안고 면학에 열중했던 것이다. 신석우는 신채호의 족조(族組), 신규식은 신채호의 족숙(族叔)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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