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조선의 근대화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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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 조선의 근대화와 기독교
조선의 근대화와 기독교
- 조선 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 -

Ⅰ. 조선의 기독교인가, 기독교의 조선인가

‘조선(朝鮮)의 기독교(基督敎)’가 아니라 ‘기독교의 조선’으로 된 연원을 밝히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유는 지난 수백 년의 화두였던 서교와 동학, 동도와 서기 논쟁의 마지막 결산이 이 대목에서 적나라한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서세동점하던 당시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애써 기독교 문제를 회피하는데, 그 이유는 사회 곳곳의 중추부에 ‘ 너무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포진되어 있는 까닭에 그들의 비판이 두려워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회와 제국주의의 상관성을 거론하지 않고서 어떻게 지난 100년의 우리문화를 되돌이켜 볼 수는 없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 역사상 1천 년래 제1대 사건’으로 묘청의 난이 김부식에 의해 좌절된 사건을 꼽았다. 단재는 조선의 역사가 원래 낭가의 독립사상과 유가의 사대주의로 분립하여 오다가 갑자기 묘청이 불교도로서 낭가의 이상을 실현하려했으나, 결국에는 패망하고 마침내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재와 같은 이가 지닌 우리문화에 대한 자주적 사고는 우연한 돌출은 아니었다. 이미 18세기 말, 19세기 초반에 걸쳐 살았던 이옥(李鈺)같은 선배들에 의하여 선보이고 있었다.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던 이옥은 전통문화에 대한 종래의 모화적 의식에서 탈피하여 우리 것을 발굴하고 그에 대해 긍지를 갖는 자존의식을 보여주었다. 당대의 실학인들이 북학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 비해, 이옥은 정신적인 데서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 하였으며, 당대 우리문화의 재발견을 시도하면서, 우리의 지리와 역사 속에서 상실되어 가는 자존의식과 주체사상의 바탕을 마련하려는 진지한 의도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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