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해석에서 영웅은 시대의 산물인가, 아니면 영웅이 시대를 만드느냐 하는 논제는 해묵은 논쟁일 수 있다. 더욱이 역사상 전환기라면, 어느 것이 먼저인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험난한 역사의 파고를 넘어 당대의 민중, 민족을 이끄는데,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사람만이 가능했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근대역사에서 그러한 인물을 찾으라고 하면, 왕조수호의 카리스마를 가진 흥선대원군을 거론하거나, 갑신정변을 이끌던 김옥균을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민중혁명가로서 전봉준을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 근대의 인물 가운데 재평가를 요청 받은 인물이 있다. 그는 조선의 제26대 국왕인 ‘고종’(1852~1919)이었다. 지금까지 고종은 유약한 군주로서 아버지 흥선대원군이나 왕비인 민왕후의 갈등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위인으로 그려졌다. 또한 그는 유유부단하여 과단성있는 근대화 정책이나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고 평가되어 왔다. 고종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사실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이루어진 공공연한 역사왜곡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이 최근에야 비로소 제기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수년간 이태진 교수의 노력의 결과였다.
사료비판의 측면에서 역사왜곡의 시정에 일부 성공을 거둔 저자는 이제 한국근대사의 새로운 개혁의 주체로서 ‘고종’을 높이 추앙하기에 이르르고 있다. 고종이 영․정조 대에 제기된 ‘민국’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서구 정치사상을 수용하였으며 개화기 근대개혁을 선도하여 대한제국의 수립과 광무개혁을 이끌고 있으며 일제의 침략에 대항한 위대한 황제였다는 것이다. 그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영웅인 동시에, 시대를 이끌고 간 주체였다. 저자는 1990년대 중반 제기한 일본의 대한제국강점에서 고종의 반일외교운동을 강조하였던 것에 이어, 여기서 고종의 근대개혁 이념에 대한 재조명에 접근하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