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에서는 한국 현대사중 가장 비극적이고 추악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신군부의 12·12 하극상 쿠데타로부터 시작된 정권찬탈음모는 결국 80년 5월, 광주시민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고 계엄군의 도청 진압작전으로 광주민중항쟁은 외형상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박정희대통령의 사망에 따른 권력의 진공상태를 메꾸려는 일부 정치군인들은 광주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군사작전(작전명령:충정작전)을 계기로 장차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성립된 것이 '제5공화국'이다. 그러나 '제5공화국'의 주체들이 영원히 승리한 것은 아니며, 광주시민들이 영원히 패배한 것도 아니었다.
사망자 166(무연고자 12기 포함)명, 행불자 64명, 상이 및 연행, 구금자가 3,642명 등 총 3,872명('99. 5. 10현재)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것은 공식통계이며 수사기간중의 불법연행자만 하더라도 3천여명이었으며 시위기간의 무자비한 연행은 얼마나 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광주민중항쟁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사실상 패배가 아닌 역사의 승리였으며, 당시 광주에서 죽어간 생명들은 무의미한 희생이 아닌 부활의 영웅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은 그 당시에는 패배한 항쟁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그 패배를 통하여 1980년대 반독재 민주의식과 민주화운동을 성장시키는 견인차로 등장한 것이다. 5·18이 민중항쟁으로 성격규정이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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