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 방학만 되면 항상 무수히 쏟아지던 과제들. 꼭 개학식이 다 되어서야 허둥지둥하던 그 유년 시절의 고통스런 기억을 아직도 난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다고 해서 6년 내내 그 전전긍긍의 시절을 보낸 건 아니다. 해가 지날수록 인간이란게 요령만 잔뜩 늘어가지고 나중에는 별 부담을 못 느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독 그 중에서도 도저히 체질상 면역을 시키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독후감이다. 독후감! 도대체가 책을 읽는다는 자체로도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시절에 그걸 읽고 속내를 토해내란 건 그 시절 나에게 있어선 비극을 넘어선 악몽 그 자체였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병적으로 책읽기를 기피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건 ‘독후감’이란 말 자체만 들어도 살이 떨리는 걸로 보아 독서는 나란 놈과는 조화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부인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덧 중학교에 들어가서 방학숙제로 독후감의 ‘독’자도 구경하지 못했을 때의 그 기쁨은 뭐랄까 박완서의 말에 빗대어 ‘초여름 첫 새벽에 달개비가 깔린 푸른 길의 이슬을 맨발로 밟을 때처럼 순수한 희열’ 이랄까. 아무튼 더욱더 교과서 외의 책엔 관심 밖이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정도 무딜대로 무뎌졌을 때 난데없이 고2 때 복병을 만나버렸다. 국어선생이었던 그는 이제까지 본 적 없었던 새로운 교육적 궤도를 걸어가면서 독후감을 부활시킨 것이다. 그때 그 복병이 처음 던져준 과제는 박완서의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장편 소설로 지금은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생각나는 거라고는 ‘미친놈, 따뜻하긴 지랄로 따뜻해! 책은 더럽게 두껍네.’라고 말했다가 어떤 친구에게 작가가 여자란 말은 듣고 ‘정신나간 년’이라고 수정한 기억밖에 남은 게 없다. 그만큼 완서와의 첫 만남은 네거티브 했기 때문에, 거의 몇 년 만에 독후감으로 쓰는 책의 저자가 또다시 박완서란 걸 알았을 때 그 충격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