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역사와 문화] 비잔틴제국 - 천 년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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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역사와 문화] 비잔틴제국 - 천 년의 명암
비잔틴제국
천 년의 명암
(살림지식총서 285)

1) 오스만 제국의 수도

15세기에 접어들자, 새로운 세력이 힘을 뻗치기 시작했다. 일찍이 비잔틴령이었던 아나톨리아(소아시아)를 비롯해, 발칸지역 일대를 정복한 투르크족의 오스만 제국이 바로 그들이다. 오스만 제국은 2개월 동안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해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이 격렬한 공방전을 지휘한 사람은 메메드 2세(재위 1451-1481)로, 그는 이를 계기로 파티(정복자) 라는 별명을 얻었다.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메메드 2세는 곧바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으로 가서, 메카 방향을 향해 예배를 올렸다. 이리하여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으며, 그리스어로 도시로 를 뜻하는 이스틴폴린 에서 유래한 이스탄불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1000년이 넘도록 번영했던 옛 모습을 이미 잃어버린 이 도시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되살아나, 이슬람교도인 투르크인에 의해 독자적인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지난날 포룸과 대로를 중심으로 계획되었던 시내의 도로는 짐을 운반하는 동물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아졌고,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나 포룸 주변에는 위층이 1층 외벽보다 튀어나온 독특한 외관을 지닌 투르크의 목조가옥이 지어졌다. 이 유적은 20세기 말에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술탄이라 불리는 오스만 제국의 수장 메메드 2세는 오스만 제국에 점령된 뒤에도 이스탄불에 남아있던 시민들에게 그들의 신앙과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허가하는 한편, 제국 각지에서 이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일 마니피코(비호자) 라고 불리는 쉴레이만 1세(재위 1520-1566) 때인 16세기에 새로운 도시의 건축활동은 절정에 이르렀다.

2) 제국 수도의 장려한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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