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찌르자 오랑캐’의 북벌을 국시로 하던 세상의 젊은이들이 처음 북경에 도착했을 때 받은 문화적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사방으로 죽죽 뻗은 도로에 넘쳐나는 재화, 거리를 가득 메운 서점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쌓여 있는 서책들, 고딕식 서양 성당과 서구 과학기술 정보들까지, 그들이 직접 목격한 청나라는 애초에 조선이 무찌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중국의 각종 서적과 사치성 소비재들이 서울로 흘러 들어오면서 외국 문물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우리 것에 대한 자기혐오가 동시에 일어났다. 당시 북경에서 들여온 서책들은 겉으로는 전통적인 성리학 서적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패관소품문과 백과전서적 총서류 들이 더 많이 쏟아져 들어왔다.
방대한 총서들이 들어오면서 예전에는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하여 금기시되었던 사물에 대한 관심은 어느새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위치로 격상되었다. 이전까지 사물은 마음공부와 이치 탐구의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탐구의 대상으로 승격되었다. 18세기 지식인들은 무엇이건 관심이 생기면 모으고 정리했다. 하지만 무턱대고 모은 것이 아니라 목차와 범례를 세워놓고 단계를 밟아 작업을 진행했다. 집체 작업에 의한 편집서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 시기 지식시장의 성격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년 귀양살이 동안 제자들과 함께 500권에 이르는 각종 저작을 펴낸 정약용의 작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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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8세기 조선의 서양인식이 17세기보다 후퇴했을까 Report
( 왜 18세기 조선의 서양인식이 17세기보다 후퇴했을까 )
목 차
서론
1. 조선후기 지식인의 서양인식
1-1. 17세기의 서양인식
1-2. 18세기의 서양인식
2. 조선중화주의
3. 서양인식의 후퇴
맺는말..
19세기 서양인이 바라본 조선의 모습 19세기 서양인이 바라본 조선의 모습
목 차
1. 서론
2. 본론
2-1 조선의 정치제도
2-2 조선 백성들의 생활모습
2-3 조선인의 성격과 사고방식
3. 결론
4. [참고문헌]
1. 서론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는 민주..
천하도를 통한 조선중화주의와 서구식 세계지도의 반응 Report
( 천하도를 통한 조선중화주의와 서구식 세계지도의 반응 )
목 차
1.들어가며
2.15세기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3.17세기 이후의 천하도
4.조선중화주의와 서구식 세계지도의 반응
5.결론
1. 들어..
실학의 개념과 성격에 대한 분석 실학의 개념과 성격에 대한 분석
1. 머리말
2. 실학의 개념의 형성
3.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實學’의 용례
4. 맺음말
1. 머리말
조선후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르면서 국토가 황폐화되었고, 정치, 사..
재중한인사회의 형성과 변천,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성립과정과 성격 재중한인사회의 형성과 변천
Index
한인의 만주 이주 배경과 한인사회의 초기 성격
1. 만주, 간도란
● 간도
- 원래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영토(함경북도 온성군 일대 두만강 삼각주를 지칭)
- 일반적으로 조선과..
미국의 한반도전략과 조선의 분단 미국의 한반도전략과 조선의 분단
1. 머리말
4·3항쟁과 그 비극은 제주도라는 좁은 지역적 특수성의 결과물만은 아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2차대전이후 해방공간에서 조선의 자주적인 민족사행로를 쟁취하기 위..
만세전 [만세전(萬歲前)]
※핵심 사항 정리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구성: 순차적 구성
-성격: 사실주의적, 현실 비판적, 소시민적
-배경: 31운동전인 1918년 겨울(시간적), 동경과 서울(공간적)
-주제: 일제 강점 하..
김중건(金中建)_ 정부자료입니다.
2월의 독립운동가 홍보자료
김중건(金中建)
(1889.12.6~1933.3.24)
1. 선정배경
북간도로 망명하여 구국 민족교육운동과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장항쟁을 전개하신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
김중건(金中建) 정부자료입니다.
2월의 독립운동가 홍보자료
김중건(金中建)
(1889.12.6~1933.3.24)
1. 선정배경
북간도로 망명하여 구국 민족교육운동과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장항쟁을 전개하신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
가족법 역사 및 현행 가족법의 제정과 개정 경과 그리고 친족 상속에 관하여는 조선민사령제11조 중에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친족 상속에 관하여는 일본 민법 규정을 의용하지 않고 모두 관습에 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법령에 의하여 조선민사령제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