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는 여권 사상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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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여권 사상가인가
황진이는 여권 사상가인가

한국 역사에서 여류로 이름이 난 이는 신사임당, 허난설헌 그리고 황진이 등 몇몇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다 아시다시피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여성상으로, 여류시인인 허난설헌은 가부장적 남성사회에 저항한 행동거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런데 황진이는 이들과 달리 아름다운 기생 출신으로 시서화에 능숙해 시인 묵객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따라서 황진이는 ‘기생’이란 이미지를 빼고는 그녀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는 예술적 재주가 있고 미모를 지닌 단순한 기생이었을까 요즈음 북한의 어느 작가가 그녀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써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적 해석이 예전과는 달라 새로운 관심을 끌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이런 경향의 해석을 시도해왔다. 한번 이 주제를 풀어보기로 하자.

-“어머니가 기생” “맹인 여자의 딸”-

조선사회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유난히 적서(嫡庶)를 법제로 규정해 차별했다. 서자는 관료사회에서는 문과에 해당하는 과거를 통해 진출하는 데 제약을 받았고, 가정에서는 재산 상속, 제사 상속 따위에서 차별을 받았다. 이는 유교적 명분론에 토대를 두었다. 황진이는 양반의 서녀라 했다. 그녀가 비록 여성이었으나 적서의 차별에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곧 그녀는 관습에 따라 서자신분의 남성과 결혼해야 했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설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가 기생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기는 하나 허균은 황진이를 개성 맹인 여자의 딸이라 했다. 아마도 이 설이 가장 맞을 것이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서경덕의 제자였다. 그러기 때문에 허균은 적어도 황진이를 만나보지는 못했을지 모르나 신상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들었을 것이다.

황진이가 만일 기생의 어머니를 두었다면 세습적으로 기생의 길을 걷는 것이 정도였다. 그녀가 기생의 길로 나선 동기는 동네 총각이 그녀를 그리워하다가 상사병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허균은 이런 따위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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