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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난 파
- 민족의 한을 노래한 음악가인가, 일제를 찬양한 친일파인가
- 목 차 -
Ⅰ. 들어가는 글
Ⅱ. 홍난파의 생애와 업적
Ⅲ. 홍난파의 친일행위
Ⅳ. 후세에 미친 영향
Ⅴ. 마치는 글
♣ Reference
Ⅰ. 들어가는 글
우리나라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나온 사람이라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온 국민이 애창하는 노래의 작곡가 홍난파가 친일 인명사전에 오르면서 그의 음악적 성과는 물론이거니와 그를 기리는 모든 것들이 비난의 시선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가 한국음악에 남긴
발자취와 업적들을 살펴보고 또한 그가 친일적 인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통해 2005년 겨울, 그에 대한 역사적인 심판을 내려보도록 하자.
Ⅱ. 홍난파의 생애와 업적
그는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이며 본명은 홍영후이다. 일제 시대에
널리 불려졌던 가곡 <봉선화>의 작곡가이다. YMCA 중학부를 졸업하고 조선 정악
전습소의 양악부에 입학하여 바이올린을 배우고 졸업 후 조선 정악 전습소의 교사로 일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우에노음악 학교에서 2년간 공부하였다. 귀국한 뒤 <대한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하는 한편 소설 <처녀혼> <향일초> 등을 발표하여 문학적 재능도 보였다. 또한 연악회라는 음악 단체를 만들어 음악 교육과 보급에 힘썼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 잡지인 <음악계>를 창간하였다.
◈ 홍난파의 업적
☞ 교육분야: 조선정악전습소 양악부를 졸업하자마자 교사로서 후학을 지도
☞ 연주분야: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바이올린 독주회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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