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난파의 친일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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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의 친일행적
홍난파의 친일행적

홍난파(洪蘭坡)
(창씨명: 森川潤)
(1898~1941)

1898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12년 황성기독교청년회 중학부 졸업
1913-15 년 조선정악강습소 서양악과 다님
1918년 도쿄음악학교 (우에노)로 유학
1919년 경성악우회 주간
1922년 연악회 창설및 운영
1926년 사립 도쿄고등음악학원 편입, 1929년 졸업
1931년 조선음악가협회 상무이사
1931-33 미국 시카고 셔우드(Sherwood) 음악학교에서 수학
1933년 이화여전 음악강사
1936년 경성방송관현악단 조직및 지휘
1937년 조선문예회 회원으로 가입,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수감
1938년 경성음악전문학교 교수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1년 조선음악협회 평의원
1941년 사망

한국 근대양악사의 대변자

우리가 머리 속에 홍난파를 떠올릴라치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짚히는 것이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불러 보았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고향의 봄])이랄지, 우리네 누님들이 서럽게 부르며 길게 늘어뜨린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봉선화]) 등의 작곡가라는 점이다. 더욱이 [봉선화]는담 밑에 저만치 외롭게 피어 있는 꽃과 같은 일제하 조국의 비운을 상징한다고 음악선생에게 배운 바 있는 우리에게, 홍난파는 민족적 수절을 지킨 음악가 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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