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반역의 역사가 김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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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반역의 역사가 김부식
민족 반역의 역사가, 김부식

고려 중기 예종, 인종 때의 정치가, 문신, 학자였다. 12세기 초엽의 대륙의 정세는 거란을 멸망시킨 탕구 만주의 금나라(1114∼1234년)가 송의 수도 변경(邊京=북송의 서울. 현재의 하 남성 개봉)을 위협하면서 고려에 대하여 사대(事大)를 요구하는 시대상황이었고, 국내 정세 는 반역자 이자겸 일당을 물리치는 데 공이 있는 서경파 정지상(鄭知常) 등이 세력을 얻게 되어 서경을 중심으로 고려의 정치세력 판도를 바꾸어보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을 때였다.

이른바 묘청(妙淸)의 서경천도와 사대주의에 대응한 자주국으로서의 칭제건원(稱帝建元)으로 금(金)나라나 송(宋)나라와 대등한 위치에서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주장을 펼때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이론은 당시 전통사상을 대표하는 유학자들과 금나라에 대한 사대관 계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려는 사대주의적(事大主義的)인 유학파 김부식(金富軾)의 반대로 좌 절을 겪게 되고 결국 묘청의 반란으로 이어져 1135년(인종13년) 묘청은 평양을 근거지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로 하는 독립정부를 세워 개경세력과 일전을 겨루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게 된다.

개경파의 거두인 사대주의 학자 김부식은 이때 평서원수(平西元帥)로서 난을 진압, 개경유학 파의 승리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모처럼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자주적 의식을 표현했 던 혁신운동은 실패하게 되고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 등 사대주의 관료는 전제정치를 강화하 는 새로운 기풍이 조성되기에 이른다. 1138년 반란을 진압하고 개선한 김부식은 집현전 태 학사(集賢殿太學士) 태자대사(太子大師)의 직을 겸했으나 1142년에 벼슬을 물러나자 동덕찬 화공신(同德贊化功臣)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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