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한복판에 고구려 유민의 독자 왕국

1. 당나라 한복판에 고구려 유민의 독자 .hwp
2. 당나라 한복판에 고구려 유민의 독자 .pdf
당나라 한복판에 고구려 유민의 독자 왕국
당나라 한복판에 고구려 유민의 독자 왕국

당나라 한복판에 고구려 유민의 독자 왕국이 존재했었다.
고구려는 비록 서기 668년에 멸망했으나 그 생명력은 끈질겼다. 멸망한 지 150년이 지난 후에도 그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그것도 한반도나 만주대륙이 아닌 중국 대륙에 끼친 발자취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정기라는 고구려 유민인데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장한 고구려인의 발자취를 살펴보자.

이정기는 (구당서)에 따르면 본명이 이회옥(李懷玉)인데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668)한지 64년이 지난 732년에 영주(營州)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태어난 영주는 고구려 별망 후 대조영 일가가 이주해 살았던 데서 알수 있듯이 고구려 유민들이 대거 강제 이주 당해 살던 곳이었다.

고구려 멸망 직후인 669년 당나라는 무려 20여만 명에 달하는 고구려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 대상은 평양성을 비롯해 당나라의 침략에 끝까지 저항했던 지역의 지배층과 백성들이었다. 고구려인들을 분산시킴으로써 고구려 부흥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보장왕과 고구려 유민들을 당의 내륙 깊숙한 곳으로 끌고가 분산 소개시켰던 것이다. 이들 중에는 당나라 수도 장안이나 요동 서쪽으로 끌려간 이들도 있지만 오늘날 내몽고 서쪽의 감숙성(甘肅省)과 섬서성, 그리고 산서성(山西省) 일대로 끌려간 이들도 있었다.

또 산동반도 이남인 강소성(江蘇省)과 안휘성(安微省) 일부 지역도 이에 포함된다. 만주 서쪽인 요녕성(遼寗省) 지역인 요서의 영주(營州) 일대에 정착한 고구려 유민들 중에 치청왕국을 세운 이정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정기는 당시 요서 일대에는 영주를 근거지로 하고 있던 평로군이 있었는데 이정기는 이 평로군의 비장이었다. 평로군에는 이정기의 고모 아들로서 내외종간이었던 후희일(候希逸)이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