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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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
발해사(渤海史)

신라의 김춘추에 의한 외교활동으로 인해서 나․당연합군을 편성하여서 백제 수도 사비성과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함락했다. 당은 백제와 고구려 땅에 각각 5도독부와 9도독부를 설치하여 지배하려고 했다. 백제땅을 신라에 넘기기로 한 약속을 어김은 물론이고, 신라 또한 넘보려는 당과 신라는 다시 싸워야만 했다. 신라는 백제의 엤땅에는 소부리주를 설치하여 백제 유민을 모아 정착하게 했다. 당나라의 고구려점령에 대항한 고구려 유민이 698년에 동모산에 이동하여 진국을 세우고 713년에는 발해로 개칭하였다.

발해는 주변의 여러 국가들(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많은 연구를 하는 특이한 현상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여겨서 통일신라와 발해가 있던 시기를 남북국시대라고 일컷고 있다.

발해가 위치한 만주지방은 현재 여러국가의 영토의 접경지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대립이 더욱 심하다.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가로 보느냐 아니면 말갈족의 국가로 보느냐에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나오고 있으며, 현재 서로의 의견이 대립되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대립은 발해 자신에 의해서 기록된 역사가 하나도 없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발해의 자신에 의한 역사 기록이 있었다면, 오늘날같이 이러한 많은 대립은 일어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발해가 있었던 만주지방의 영토를 현재 가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관련 유적들을 밝히는 것을 꺼려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더욱도 연구가 어렵다. 이러한 자료 부족으로 인해서 성씨를 조사하는 등의 조그만한 조사에라도 매달려야 하는 어려운 것이 많이 있다.
우리는 발해를 우리의 역사에 넣고 있고, 주변의 나라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데에는 이권의 대립도 있겠지만, 역사적인 자료에서도 대립되는 문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발해를 세웠다는 대조영에 대해서 남아있는 오래된 기록들을 보면 중국의 「구당서」 와 「신당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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