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발해의 당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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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발해의 당원정기
발해의
당나라 원정기

◈발해의 당나라 원정기◈

◆ 목차

1. 발해(渤海)의 개국과 발전

2. 발해 무왕(武王)때의 대외 관계

가. 당(唐)
나. 신라(新羅)
다. 일본(日本)

3. 발해의 당나라 원정

가. 전쟁의 배경
나. 전쟁의 진행

4. 전쟁이후의 발해

5. 함께 생각해 봅시다.

가. 대문예는 왜 발해를 저버렸는가
나. 장문휴 장군은 왜 직접 장안으로 입성하지 않았을까
다. 당과 신라의 병력은 정말로 얼어 죽었을까
라. 문왕이 아버지 무왕을 따라 당을 다시 한번 공략 했더라면...

1. 발해(渤海)의 개국과 발전

668년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고구려 유민 2만 8000여 가호를 중국 땅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때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大祚榮)도 그의 아버지 걸걸중상과 함께 요서지방의 영주(지금의 조양)로 옮겼다.
당시 영주는 당이 북동방의 이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운영한 전략도시였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말갈인·거란인 등 다수 민족이 집결되어 있었다. 이들은 당이 약화되면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였다.
696년 5월 마침내 거란인 이진충과 손만영이 영주도독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틈을 타 대조영은 고구려유민·말갈인과 함께 영주를 빠져나와 만주 동부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대조영은 추격해오는 당군을 천문령(天門嶺)전투에서 크게 무찌른 뒤에 만주 동부지방에 남아 있던 고구려유민과 말갈인을 규합하여, 698년 길림성 돈화현 부근의 동모산 기슭에 진국(震國:振國)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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