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식민 지배가 더욱 악랄해져 가는 1939년 순문예지 {문장}과 {인문평론}이 창간되어 침체된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특히 {문장}은 발간과 함께 신인 추천제를 실시하여 박목월(朴木月)․박두진(朴斗鎭)․조지훈(趙芝薰)․이한직(李漢稷)․김종한(金鍾漢)․김상옥(金相沃)․이호우(李鎬雨) 등의 유능한 시인들을 배출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인들이 미처 작품 활동을 제대로 전개하기도 전인 1941년 {문장}과 {인문평론}은 폐간되고, 문예지는 {국민문학} 하나로 통합되기에 이른다. 일제의 국민 문화 정책은 더욱 노골화되어, 1939년 '조선문인협회'가 조직되고 1940년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 내에 문화부가 설치되고, 1943년에는 '조선문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문학 단체가 하나로 합쳐 '조선문인보국회'가 결성된다.
이러한 일제의 문화 정책에 따라 많은 문인들이 친일과 변절의 길을 걷게 된다. 이광수(李光洙), 이태준(李泰俊)․유진오(兪鎭午)․임화(林和)․김기진(金基鎭)․백철(白鐵)․정지용(鄭芝溶) 등 수많은 대표적 문인들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러한 굴욕과 훼절의 길을 선택하였음은 실로 한국문학사의 부끄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문인들 중에는 죽음으로 일제에 대항한 투사도 있었으며, 멀리 국외로 도피하여 국권 회복의 그 날을 기다리며 분루(憤淚)를 삼킨 지사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