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권의 안정은 광종(950~975)때 이루어졌다.
광종은 958년에 과저 제도를 실시하여 왕권의 강화를 위한 새로운 관료체제의 기초를 잡았고, 문물제도를 개혁하였고 고려의 저치기구는 문종(1047~1083)때 완비되었다.
고려 초기의 귀족사회를 형성했던 정치적 주도세력은 통일신라말기 육두품 출신의 유학자들이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신라 육두품 출신의 정치적 세력에 대항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타났다.
발해를 멸망시키고 요나라를 세운 거란과 금나라를 건국한 여진은 고려 건국 초기부터 고려의 국경을 침범하여 괴롭혔으나 고려는 송나라와 주된 문화교류를 이루었으니, 12세기초에 송의 휘종이 보낸 대성아악이 고려의 음악문화를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시킨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배경에서 이해된다.
고려사회의 국왕이나 귀족들은 정치가로서의 도덕적 수양을 중요시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도덕적 합리주의를 내세원 유교를 발전시키게 된 이유의 하나였다. 이러한 유교적 배경에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편찬되었다. 그러나 고려문화의 사상적 근저는 불교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고려의 불료가 남긴 문화유산의 하나는 고려대장경이고, 다른 하나의 불교 문화는 연등회와 팔관회에서 찾아질 수 있겠다.
세째 시대의 음악문화는 통일신라의 음악문화를 전승하여 발전시킨 향악, 통일신라의 당악이란 터전 위에 송나라의 교방악을 수용했던 당악, 그리고 12세기 이후 고려에 소개된 대성아악, 이상 세 가지 주류에 의해서 특징지워질 수 있겠다.
고려의 향악은 통일신라시대의 향악전통을 전승하여 그 터전 위에 새로운 향악기를 첨가하고, 향악의 악조 및 향악정재를 발전시킴으로써, 그 명칭은 신라 때보다 넓은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세째 시대 향악의 특징은 향악정재의 등장에 의해서 규정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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