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은 이이(李耳). 자는 담(聃).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초(楚)나라 고현(苦縣:허난성[河南省] 鹿邑縣) 출생.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장서실 관리인)였다.
사마천의 史記(노자 한비열전) 에 보면
(네이버 지식에서 노자 치고 백과 사전보세요)
노자(老子)는 초(楚)나라 고현(苦縣; 지금의 하남성 녹읍 동쪽)사람으로 성은 이(李)이고,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었다. 그는 주(周)나라 왕실의 서고(書庫)를 관리하는 사관(史官)이었다.
노자는 워낙 조용히 살다가신 분이라서 의견도 여러 설이 있습니다.
도덕경이 만들어진 것에 대한 설명도 여러 가지 있다. 5천 여 글자로서 道와 德에 대한 내용으로, 산관(섬서성 봉상부)를 나서면서 윤희의 청에 따라 지었다는 설, 전국 초 노자의 후학들이 편찬 했다는 설, 또 주나라의 쇠퇴를 한탄하고 은퇴할 것을 결심한 후 서방(西方)으로 떠났다. 그 도중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上下) 2편의 책을 써 주었다고 설 등이 있다. 이것을 《노자》라고 하며 도덕경(道德經)》(2권)이라고도 한다, 도가사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전기에는 의문이 많아, 노자의 생존을 공자보다 100년 후로 보는 설이 있는가 하면, 그 실재 자체를 부정하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