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야는 1900년 8월 30일함흥교외에 나촌이라는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조선시대말 군수로서의 상당한 배산을 가졌던 아버지와 순 농촌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7-8세 부터 서당을 다녔으나 훈장과 서책을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하였다. 1910년 11살 무렵 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서울에 있던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여 겨성 보통고등하교에 입학하였다. 그 당시 동창으로는 박헌영이 있었다. 그러나 4학년 때 서모와 싸우고 함흥고보로 전학하게 된다. 1919년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한설야는 비로서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아버지의 뜻대로 법전에 입학하였으나 종교사건에 연류되어 재적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해 한설야는 형을 따라 중국 북경으로 가서 중국어를 배운다. 북경에서 한설야는 중국 육군성관리의 집에 있으면서 일본 논문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익지영문학교를 다니면서 사회과학을 공무하기 시작함. 1921년 한설야는 서울로 올라왔지만 그 사이에 실연하고 다시 동경으로 건너가게 된다. 동경에서 역시 사회과학을 공부하게 된다. 1923년 한설야는 지진으로 학교를 휴학하고 처녀징편을 썼다가 불질러 버린다. 그해 겨울 귀국하여 북청고보 겅서로 재직하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25년 부친이 사망하자 한설야의 집 가세는 점점 기울게 된다. 그래서 한설야의 가족은 만주로 이주하게 되고 한설야는 만주일일신문에 전향한 자신의 문학세계를 보이게 된다.
1927년 한설야는 귀국하여 카프의 조직에 합류한다. 그후 귀국하여 조선일보등에 있다가 1945년조선프로레타리아 예술동맹에 있다가 조선문학가 동맹에 참여 월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