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성풍속과성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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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성풍속과성윤리
<한국사회의 성풍속과 성윤리>

*성풍속과 성문화의 역사적 변천
우리 나라에서 과거에 어떤 성규범, 성윤리가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고조선 시대에 이미 여자의 정절을 중요시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여러 기록에 의하면, 그후 삼국시대에는 개방적인 남녀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밤이면 남녀가 어울려 춤과 노래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여러 설화들도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유화부인은 혼인식을 올리지도 않고 부모 모르게 해모수와 사랑하여 주몽을 임신한다. 유리왕도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정식부인이 아닌 예씨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써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주몽, 즉 동명성왕은 자신이 혼인 전에 예씨녀와 동거한 적이 있고, 부인인 서소뇌도 우태와의 사이에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으며 주몽과의 결혼은 재혼이다.
또 김유신의 누이 문희도 김춘추와 혼인 전 임신을 하게 된다. 이것은 삼국시대와 이조시대 사이의 성문화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들이다. 고려시대의 성풍속은 비교적 자유로워서 이조중기 이후에 보였던 청산과부의 수절은 이 시대에는 없었고 50세 이후의 재혼도 자유로웠다. 성종비인 문정왕후나 충선왕비인 허씨등은 왕에 재혼했던 경우로 재혼녀도 왕비가 될 수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조시대에 와서는 정치, 사회적으로 기득권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유교가 성행되고, 따라서 가부장적 규범이 여성의 삶을 지배함으로써 성문화 역시 열녀, 은장도 문화 등으로 표출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또한 오늘날 성규범의 기본도구를 만들어 내게 되었으며. 성개방의 소용돌이가 도래하자 무방비 상태의 혼돈과 혼란이 오게 된 것이다. 한쪽으로는 무절제하고 문란한 성풍속을 부추기고(주로 남성에게), 다른 한쪽으로는 남녀 칠세 부동석, 처녀신봉, 열녀의식 등의 억압된 성규범을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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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