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허(憑虛) 현진건(1900~1943)은 한국 소설사에 있어 근대적 리얼리즘이 확립된 시기인 1920년대에 주로 활동한 작가이다. 대략 1920년대의 문학사적 의의가 전대의 교훈주의에 대한 공격,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 조성, 자연주의를 포함한 사실주의의 결정론 수용, 사회적인 힘의 위력에 대한 자각, 인간의 수성(獸性)적 국면 드러내기, 수사학의 다양화1) 등이라고 할 때, 현진건은 현대의 이와 같은 문학사적 정의를 가능하게 만든 당시의 주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현진건 소설을 이해하고자 할 때 작품 전체를 통괄할 수 있는 원리는 아무래도 기법적인 면에서보다 의식적인 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가 태어나서 작품 활동을 한 시대는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시기였으며, 근대사회로의 역사적 이행이 일제의 강점에 의한 식민지 사회로 연결되어 파행성을 면치 못한 시대였다. 이 시대의 작가들은 의식적인 면에서 현실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현진건은 그 시대와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작품 활동을 한 대표적 작가라는 점에서 그의 의식에 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하리라 여겨진다.
일제 강점하의 문학 행위에 대한 단재식의 문학관2)에 의거하지 않더라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 시대와 사회와의 관련성을 떠나서 논할 수는 없다. 작가는 오직 그가 속하고 있는 집단의 세계관을 표현하며, 그 세계관은 또한 그 집단이 속하고 있는 사회의 바탕 위에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할 때, 작품 해석의 열쇠는 바로 이 세계관의 해명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 작품의 미적 원리도 곧 그 작품이 세계관의 구조화 과정과 연결될 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고는 현진건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그의 세계인식의 본질과 변모 양상이 작품 속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세계 인식의 변모 양상에 따라 그의 작품은 크게 3단계로 구분된다.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