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록(李源祿)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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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陸史 이원록(李源祿) 선생
1904. 4. 4(음)~1944. 1. 16

․1925. 의열단(義烈團) 가입
․1932. 한국군관학교 수료(중국 남경)
․[청포도] 등 민족시(民族詩) 30여 편 발표
․1944. 1. 옥중(獄中) 순국(중국 북경)
․1990. 건국훈장 애국장 추소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육사(陸史)의시(詩) [광야](曠野)의한 귀절이다. 복국의식(復國意識)과 광복(光復)의 열의(熱意)속에 점철된 삶을 영위한 선생은 의열단(義烈團)에 가입, 항일투쟁(抗日鬪爭)으로 무려 17회에 걸쳐 옥고(獄苦)를 치렀으며 민족 저항시인으로서 민족혼을 일깨웠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신의(信義)와 의리가 강한 선비로 알려지다

1904년 4월 4일(음) 경북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원촌리(遠村里) 881번지에서 아은처사(亞隱處士)인 부친 이가호(李家鎬)와 모친 선산인(善山人) 허형(許衡)의딸 허길(許佶) 사이에서 5형제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본명은 원록(源祿)이나 후에 원삼(源三) 또는 활(活)이라 하였으며 자(字)는 태경(台卿), 아호는 육사(陸史)이다.
어려서부터 형제지간의 우애가 지극하였으며 용모는 청수하고 깨끗한 선비형으로서 한번 사귀면 생사를 같이 할 만큼 신의와 의리가 강하였다. 12살이 되던 해에 조부 이중직(李中稙)이 숙장(塾長)이었던 예안보문의숙(禮安普文義塾)에서 한학을 배웠다.
17세가 되자 대구로 이사하여 시내에 있는 교남학교(嶠南學校)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이듬해에 영천에 살고 있던 안일양과 혼인하였다. 영천에 있는 백학서원(白鶴書院)에서 학문을 연수하였으나 끊임없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여 1923년에 일본에 건너가 1년여 간 동경에 있는 대학을 다니다가 1925년에 귀국하였다.

의열단원 윤세주에 감화되어 의열단에 가입 활동중,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으로 붙잡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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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