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인물 3월에 되새겨 보아야 할 날들 애국시·어록 보훈문예물

1. 3월의 인물 3월에 되새겨 보아야 할 날.hwp
2. 3월의 인물 3월에 되새겨 보아야 할 날.pdf
3월의 인물 3월에 되새겨 보아야 할 날들 애국시·어록 보훈문예물


민족정기선양 교육자료(3월)

☯ 3월의 인물
☯ 3월에 되새겨 보아야 할 날들
☯ 애국시․어록
☯ 보훈문예물
☯ 현충시설

3월의 인물

3월의 독립운동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선생
(1864. 7. 15~1953. 4. 16)

선생은 1864년 7월 15일(음) 서울에서 역관으로 개화파인 부친 오경석(吳慶錫)과 모친 김해김씨 사이에서 1남 1녀의 독자로 태어났다. 1880년 사역원(司譯院)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한 선생은 1895년 동경외국어학교 교사로 나갈 때까지 한성순보 기자, 통신국장 등을 역임했다. 1902년 유길준의 쿠데타에 연루된 혐의로 일본에 망명, 동학교주 손병희와 조우한 선생은 권동진, 양한묵과 함께 평생동지로서 손병희를 좌장으로 동학 내문명파를 형성했다. 1906년 천도교가 창건되자 선생은 『만세보』의 사장, 대한협회 부회장으로 일진회 비판의 선봉에 섰다.

선생은 3․1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천도교의 도사(道師)였던 선생은 손병희, 권동진, 최린 등과 함께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대표로 참여, 3․1운동 중에 서울에서 조선국민대회와 조선자주당연합회 명의로 선포된 조선민국 임시정부의 조각에서 식산무경(殖産務卿)에 오르기도 했다. 이 일로 선생은 피체되어 3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초 손병희의 사후 천도교가 보수파와 혁신파간 노선투쟁이 전개되자 선생은 보수파의 입장에서 천도교 교단의 사수에 노력했다. 이어 1925년 교단을 장악한 보수파가 다시 신파와 구파로 분화되자 선생은 소수파인 구파에 가담하였다. 구파는 일제에 타협적인 신파를 견제하면서 6․10만세운동의 모의과정과 신간회에 주도적으로 참여, 일제에 비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
정부자료
출처: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