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학 - 케인즈 경제학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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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학 - 케인즈 경제학에 관해서
1. 시대적 배경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확장되어서 남녀노소 막론하고 주식투자를 하였습니다. 1929년 10월 29일 암흑의 화요일에 미국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해 400억 달러의 투자가 소멸되어서 은행의 기능이 마비되어 공장은 문을 닫고 실업의 증가로 인해 대공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세계 대공황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대공황과 대량실업이란 고전파 경제이론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잉생산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세이의 법칙’을 정면으로 반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정부의 간섭과 예산의 확대 운영을 주장하는 케인즈 이론이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2. 케인즈의 생애
- 케인즈는 1883년 6월 5일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르크스가 사망한 해에 태어난 케인즈는 경제학의 발전에 분수령인 마르크스 에서 케인즈로 이어지는 과정의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해였습니다. 케인즈의 아버지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논리학과 경제학을 강의하여 명성이 높아져 가고 있었습니다.
케인즈는 이튼 학교를 졸업한 후 캠브리지 대학에서 철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캠브리지를 졸업한 후 문관시험에 2등으로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인도 청에 2년 동안 근무하였습니다. 마샬의 자리를 계승한 피구의 권유로 모교로 돌아와 조교가 되었으며, 그해 말에 [ 인도의 최근 경제사정 ]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에는 [ 지수론 ]이라는 논문으로 아담 스미드 상을 받았습니다. 1차 대전 기간 동안은 영국 재무성에서 근무를 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 파리강화회담에 배상금조정위원회에 참석하였으나, 정부의 보복적인 배상정책과 의견이 맞지 않아 회의 도중에 사표를 내고 귀국하였습니다. 이 같은 분리함을 호소하기위해 [ 평화의 경제적 귀결 ]을 썼습니다. 그는 보복적 배상금의 청구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전쟁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선견지명과 도덕적인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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