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조사] 금동미륵반가사유상 - 일본 목조 반가사유상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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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조사] 금동미륵반가사유상 - 일본 목조 반가사유상 비교
금동 미륵 반가사유상
- 일본 목조 반가사유상 비교 -
Ⅰ. 머리말
Ⅱ. 반가사유상의 유례
Ⅲ. 국보 제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Ⅳ. 광륭사 목조반가사유상의 비교
Ⅴ. 맺음말

※ 참고문헌 ※
Ⅰ. 머리말
반가사유상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한쪽 다리를 반대편의 무릎 위에 얹은 사유의 상으로 6세기부터 7세기 무렵 만들어졌다.
초기 불교 전래 시기의 삼국에서 만들어져, 삼국통일 초기까지만 유행했던 독특한 양식의 불상이다
대표적인 국보 금동 동상은 국보 78호, 83호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다. 본고에서는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다루고자 한다.
Ⅱ. 반가사유상의 유례
미륵반가사유상은 인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성불(成佛)하기 전의 태자인 미륵보살의 차림새이다.
당시 왕자들의 호사스러운 차림으로 갖은 보배로 장식한 천관 외에 귀걸이와 이중의 목걸이, 팔찌, 향주머니 등을 맨 가슴걸이 등으로 요란한 치장을 하고 있다.

반가사유상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간다라지역에서 다른 보살상과 마찬가지로 수염이 소멸하고, 거의 여체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중국의 북위시대를 지나면서 더욱 일반화 되기 시작했다.
양식적인 특징은 성숙하지 않은 어린 소녀상이나 여성적 용모를 갖춘 미소년상과 같이 가냘픈 몸매를 갖게 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를 거쳐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Ⅲ. 국보 제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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