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민왕과 목호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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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공민왕과목호의 난
또 공민왕은 성균관을 국자감으로 개칭하였고요
공민왕 11년에는 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였습니다
장사치' '벼슬아치' 등 사람을 가리키는 '치'라는 언어, 임금의 음식상을 가리키는 '수라'는 몽골어에서 비롯되었고, 오늘날 애용되고 있는 만두, 설렁탕, 소주와 같은 음식문화, 여자들이 머리를 땋을 때 다리를 넣는 일, 도 투락 댕기와 같은 여성 풍속, 혹은 두루마기와 저고리 같은 의복에 몽골의 풍속이었습니다
원나라가 철령이 북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설치한 쌍성총관부를 폐지하였습니다.
1370년---이성계의 요동동녕 부정 벌.1371년---신돈 처형.1372년---응방 설치.1372년---자제위 설치.
공민왕은 노국 공주가 죽은 후 궁궐에 자제위를 설치하여 젊고 외모가 잘생긴 청년을 뽑아 이곳에 두고 좌우에서 시중을 들게 하였습니다.
목호의 난은 고려 말기 탐라의 목호들이 일으킨 반란인데 요목호는 제주도에서 말을 기르는 몽골의 목자를 말합니다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이 시작된 충렬왕시기에 제주도에 목마장을 설치하고 목호를 보내어 말을 기르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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