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학사] 죽림칠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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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사] 죽림칠현에 대해
[ ‘문학과 음악 그리고 술로써 세상을 잊다’
대나무 숲속의 일곱 현자]

♣‘죽림칠현’ 이들이 등장한 이유는

명제가 죽은 지 19년 뒤인 정시(政始) 10년(249)에 위나라의 군사 실력자인 사마의는 중신들 사이의 치열한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실권을 장학하기에 이른다. 사마염(司馬炎:236~290/사마의손주)은 주도면밀하고 잔인하게 적대 세력을 말살하면서 위 왕조 찬탈 계획을 추진했다. 태시 원년(265년)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자 사마염이 즉위하여 위 왕조를 멸하고 서진(西晋) 왕조(265~316)를 세웠다. 위진 왕조가 교체되는 이 험난한 시기에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고 불리는 일곱 인물이 나타난다.

♣‘죽림칠현’ 그들은 누구인가

위진 교체기에 정치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 완적(阮籍:210~263), 혜강(慧康:224~263), 산도(山濤:205~283), 유영(劉怜:생몰년미상) 왕융(王戎:234~305), 완함(阮咸:생몰년 미상), 향수(向秀: 생몰년 미상)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복잡한 현실을 떠나 속세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생활 방식을 추구했다. 그들은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을 신봉하여 당기 권력이 강요하는 유가적질서나 형식적 예교를 비웃고 그 위선을 폭로하기 위하여 상식에 벗어난 언동을 감행하였다.

“이들은 언제나 죽림에 모여 술을 마시고 기분전환을 했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그들을 ‘죽림칠현’이라고 부른다.” - [세설신어(世說新語)]임탄편(任誕篇)

♣죽림은 어디인가

하내(河內) 산양(山陽). 오늘날 하남성 초작(焦作)시의 북쪽.

당시의 수도인 낙양으로부터 불과 200키로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한나라 마지막 황제인 헌제가 황제위를 조비에게 물려주고 퇴위되어 안치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이 지역의 상징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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