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과 고고학 - 고구려 개관 및 유물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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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 고고학 - 고구려 개관 및 유물 유적
[역사학과 고고학]
고구려

목차
Ⅰ. 개관
Ⅱ. 유적
Ⅲ. 유물

Ⅰ. 개관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고대국가를 이룩한 고구려는 문헌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37년 지금 중국 동북지방의 환인인 졸본에서 건국하였다고 하며, 건국 직후부터 주변 세력을 병합하여 영역을 확장하여 갔다. 그 후 고구려는 집안의 국내성과 평양으로 차례로 도읍을 옮겼다. 국내성 시기의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방과 한반도에 걸쳐 넓은 영토를 차지해 고구려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427년 평양으로 천도한 고구려는 중국 및 서역과 적극적으로 교역함으로써 수준 높은 문화대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6세기 중엽 이후 귀족들의 분열과 신라의 성장, 수·당의 압박 등으로 혼란에 빠져 668년 멸망하였다.
고구려 역사는 고분의 변천 과정에 따라 세 시기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고구려 세력의 등장기부터 3세기 말까지는 수혈식 장법의 적석총이 중심인 시기로 정치적으로는 국가의 성립과 발전기라고 할 수 있다. 3세기 말에서 4~5세기는 횡혈식 장법의 고분들인 석실적석총과 석실봉토분, 벽화고분이 공존하는 시기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가 정비되고 대외적으로 국력이 팽창하는 시기이다. 6세기 이후가 되면 석실봉토분과 사신도 중심의 벽화고분이 축조된 시기이며 정치적으로는 고구려의 쇠퇴기라고 할 수 있다.
Ⅱ. 유적
1. 도성
고구려는 건국 초부터 평지성과 산성을 짝으로 한 도성체제를 갖추었다. 초기 도읍지인 환인지역에서는 평지성인 하고성자 토성과 산성인 오녀산성이 고구려의 졸본성과 흘승골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하고성자 토성은 그 위치가 광개토대왕비문과 부합되지 않는 점이 있어 나합성이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하나, 나합성은 그 시기가 고구려 초기라는 고고학적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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