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성리학자 이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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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성리학자 이언적
조선 중기 성리학자 이언적

1. 개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서 본관은 여주. 자는 복고, 호는 회재·자계옹. 참군 수회의 손자로, 생원 번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주손씨로 계천군소의 딸이다. 초명은 적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자를 더하였다(1491~1553)

2. 관직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이조정랑·사헌부장령·밀양부사를 거쳐 1530년 사간이 되었다. 이때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경주의 자옥산에 들어가서 성리학연구에 전념하였다.1537년 김안로 일당이 몰락한 뒤에 종부시첨정으로 불려나와 홍문관교리·응교·직제학이 되었고, 전주부윤에 나가 선정을 베풀어서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때 조정에 일강십목소를 올려 정치의 도리를 논하였다. 이조·예조·형조의 판서를 거쳐 1545년에 좌찬성이 되었다. 이때 윤원형 등이 선비를 축출하는 을사사화를 일으켰을 때 추관이 되어 선비들을 심문하는 일을 맡았지만 자신도 관직에서 물러났다.1547년 윤원형 일당이 조작한 양재역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63세로 죽었다.

3.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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