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그 뷔히너 - 보이첵- 연극과 희곡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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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뷔히너 - 보이첵- 연극과 희곡 분석
1. 작가소개
게오르그 뷔히너 (1813-1837)
뷔히너는 독일 중서부 지역도시인 다름스타트 근처의 한 마을에서 1813년 10월17일, 지방 관료 의사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저유로운 나소의 소유자요 나폴레옹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조숙한 소년시절 이미 자신의 미래를 의학으로 결정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브르대학으로 진학해 의학을 공부하던 그는 2년만에 다시 모국으로 돌아왔다. 의학과 함께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던 그는 2년만에 다시 모국으로 돌아왔다. 의학과 함께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기에센대학으로 옮긴 그는 급진적인 정치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난 무덤 속에 있는 것처럼 홀로 있다오. 언제 당신의 소식이 날 깨워줄지 친구들은 날 저버리고, 마치 귀머거리처럼 우린 서로의 귀에 대고 소리치네. 차라리 벙어리였더라면 우린 서로 쳐다볼 수 있을 텐데”라고 약혼녀에게 보낸 편지에 암시한대로 그는 천성적으로 고독한 이상주의자였다. 낭만주의의 과장된 수사를 거부하며“시인은 도덕교사가 아님”을 지적했던 그는 반 귀족적, 반 계급적 성향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천재작가였다.
뷔히너가 살았던 짧은 생애는, 독일에서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W:빈회의}가 성립된 1815년부터 1848년 3월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인 3월 혁명 이전 시대 Vormarz (1815-1848)였고, 그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당시 독일은 수십 개의 소공국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군주들의 전제정치의결과 민중의 자유가 철저히 탄압되었고, 경제적으로 후진성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민중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뷔히너는 이러한 상황에서 헤센의 폭압정치에 비판을 가하는 반면 지배계급에 의해 착취당하는 민중에게는 따뜻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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