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성립배경
사회주의 및 노동조합운동에 반대하면서 고전학파와 같이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유방임정책을 옹호하는 학파가 1870년대에 등장하였는데 이학파가 한계효용학파이다. 1870년대에는 서구 각국의 경제가 대체로 지속적인 성장을 시현하는 가운데 지속적인 성장을 시현하는 가운데 노동의 생산성과 모든 계급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 한계효용학파는 사회주의 경제학파이론의 극단을 배척하고 자본주의의 장래에 대하여 낙관적인 견해를 가졌다. 왈라스를 중심으로 한 로잔느학파의 이론은 순수경제학의 대상을 사회적 부의 교환가치의 연구에 한정시키고 여러 재화의 교환가치의 연구에 한정시키고 여러 재화의 교환가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고 상호 함수적 성질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밝히면서 그런 교환가치의 배후에 숨어있는 한계효용 즉 주관적 가치를 문제로 삼았다. 또 그는 순수경제학의 본질을 수학적인 것이라고 인식하여 수학적 방법을 사용한 수리경제학의 대성자였다. 그의 업적을 계승하여 일반균형이론을 발전 완성시킨 사람은 이탈리아의 파레토(VilfredoPareto)이다. 이들을 일명 수리경제학파라고도 한다.
스위스의 로잔느 대학에서 왈라스에 의하여 창설된 이 학파는 뒤에 파레토에 의하여 이어 졌다. 오스트리아 학파와 함께 한계효용학파로 일괄되기도 하며 또는 좁은 의미 의 수리경제학파로 부르기도 한다. 왈라스는 제본스, 맹거와 더불어 한계효용학설을 주 도한 3인 중의 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특히 수리적 방법을 도입하여 일반균형의 이론을 확립한 학문적 공헌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제본스와 마찬가지로 쾌락주의의 기초위에 효용이론을 구성하였으며 제본스나 쿠르노보다 더욱 본격적으로 수리적 방법을 전환 효용이론과 일반균형이론의 종합을 가능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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