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는 1225년 초에 나폴리 근처의 로카세카 성에서 귀족 가문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란돌프는 롬바르두스 가문 출신이며 어머니 테오도라는 나폴리의 귀족이었다. 토마스가 다섯 살이 되자 부모는 그의 삼촌이 수도원장으로 있는 몬테 카시노의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러나 여기에 종교적 이유가 전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서 토마스느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데 주력하던 대수도원의 전통적 정신 속에서 교육되었다. 그러나 황제와 교황 사이의 정치적 싸움으로 인하여 토마스는 1239년 몬테 가시토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14살이 되자 나폴리의 왕립대학에 들어가 7과목의 자유기예학 공부를 시작했다.
여기서는 파리 대학과는 반대로 교회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토마스는 무엇보다도 히베르니아의 페트루스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소개받게 되었다. 그러나 토마스는 여기서 30여 년 전에 창립된 도미니쿠스 수도회도 알게 되었으며 1244년에는 이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결국 토마스는 자신을 일년 동안이나 감금하기까지 했던 가족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미니쿠스회에 입회한 것이다.
1245년 가족으로부터 풀려난 토마스는 파리 대학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했으며 1248년에서 1252년까지는 쾰른 대학의 알베르투스 마뉴스에게서 공부했다. 당시 그는 중세 대학의 가장 위대한 석학이었으며 크리스트교적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의 기초를 놓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1252년 도미니쿠스 수도회는 토마스의 스승이 제안하는 대로 그를 파리로 보냈으며 거기서 토마스는 토미니쿠스회의 수도원 학교에서 학사로서 교사직을 맡게 되었다.
토마스는 1년 동안 성서(이사야서)를 강독한 후 다시 2년 동안 독창성은 없지만 조직적인 체계와 균형감으로 인해 신학 교과서로 통하던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강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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