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력사학적 접근의 근거 → 처용에 관한 여러 자료 분석
① 삼국사기(권11) : 처용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헌강왕의 동순시 어디서인지
모르지만은 용모와 의건이 괴상한 사인이 가전에 나타나 가무하였기에
당시 사람들이 이들을 「산해정령」이라 하였다.
② 익제난고
③ 정 의 시 : 울주로 류배되어 처용이 출현하였다고 전하여지는 처용암을 찾았다라고
하는 내용 (충혜왕대)
④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⑤ 려말문인의 시문
①의 경우에만 설화화될 조건을 가지고 있을뿐 나머지 ②,③,④,⑤의 경우에는 모두
벽해에서의 처용으로 비록 그 용모착의가 괴상한 것은 밝히고 있으나 자연인으로서의
처용이었으며 결코 신비적인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Ⅰ.삼국유사에서 처용을 용자로 본 까닭
중국과 우리의 용에대한 공통적 관념은, 「수지물」이며 수저 심연 소택 하천 해중의 정령으로 믿어지고 있음.
용은 인류의 조복자로서 황제를 상징하기도 하나 그 반면 풍우를 자재로 일으키는 까닭에
기우의 대상이 되고 항해의 수호신이 되는 것이 보통이고, 때로는 선박을 용에 비유한 예를
중국의 고문헌에 찾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있어서 용의 출현에 관한 기사 십조가 거의 모두 풍우와 관련되어 있고,
삼국유사에 있어서는 보요선사의 대장경반래에 얽힌 항해설화와 거타지설화는 모두 용의
보호를 받으며 항해한 것으로 되어있다.
⇒ 처용이 용자라고 하는것이 설명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