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5수의 향가중 처용가 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고, 많은 논문이 발표된 작품
은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정설이다라고 할 수 있는 이론이 없는 상태이다.
우선 처용의 신분문제만 하더라도 호족의 後裔나, 혹은 그 지방에 상륙한 이슬람
상인등의 역사적 실제人物로 보는가 하면, 僧(중), 國巫, 醫巫 등으로 파악히기
도 하여 실로 다양하다.
처용의 신분문제는 처용가의 해석을 左之右之하는 매우 큰 문제로 이 곳에서
모든 이론은 출발된다. 그래서 우리도 처용의 정체를 중요하게 다루어 역사, 사
회적관점, 불교적 관점, 민속적 관점 등 세측면에서 다각적으로 처용의 신분에
접근하려 한다.
그리고, 자칫하면 잊기쉬운 문제인 '처용랑 망해사조'가 설화라는 사실을 인
지하고, 그 구조를 분석하려 한다
. 설화를 설화로 분석하지 않고 역사학을 잘못 사용하거나 섣부른 사회문화 비평만
을 사용해 처용가를 분석하려한다면 그 오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처용가에 대한 다양한 연구논문등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한 이론을 섣불리
선택하기 어렵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이론만을 주장하는 방법이 아니라 많
은 부분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그 이론들을 모두 비판하고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
다.
II. 본 론
1. 노래와 기록문
처용랑과 망해사
제49대 헌강대왕 때에는, 서울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장이 연이어져
있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다. 풍악과 노래 소리가 길에서 끊이지 않았고, 바람
과 비는 사철 순조로웠다. 이때 대왕이 개운포 (학성 서남쪽에 있으니 지금의
울주이다. )에서 놀다가 돌아가려고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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